2014년 4월 7일 월요일

오리지널 <로보캅> vs 2014 <로보캅> 어떤 점이 같고 다른가!

할리우드에서는 과거에 인기 있었던 작품을 리메이크하고, 어느 샌가 스토리가 산으로 가기 시작하며 생명력을 잃어버린 시리즈물을 리부트 시키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리메이크 작은 크게 인정받은 원작이 있기에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새로이 탄생한 영화가 잘 만들어졌든 아니든 간에 원작과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호세 파딜라 감독에 의해 새로이 탄생한 <로보캅>도 마찬가지로 1987년 폴 버허벤 감독의 <로보캅>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스토리의 큰 틀은 같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만큼 그 안의 세부내용들은 많이 달라졌다. 그러면서도 원작을 떠올리게 할 만한 점들을 많이 남겨놓고 있기도 하다. 이는 새로운 <로보캅>을 기존의 <로보캅>과는 다른 작품으로 여기게 하면서도 여전히 원작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따로 떼어놓고 보자면 제법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원작을 생각하자면 여러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로보캅>과 기존의 <로보캅>의 어떤 점이 같고, 또 달라졌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바로 로보캅의 외견이다. 지금 보면 깡통로봇같이 보이기도 하는 로보캅의 모습은 최신 트렌드에 맞춰 날렵한 슈트를 입은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음~치킨”으로 통용되는 소리와 함께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움직이던 로보캅은 보다 매끄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외견도 다르지만 로보캅이 탄생하게 된 이유도 다르다. 원작에서는 범죄의 도시 디트로이트에 ‘델타시티’라는 새로운 미래도시를 건설하려는 거대기업 OCP가 경찰을 인수하고, 치안유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경찰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려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ED-209였지만 프로그램 결함으로 새로운 로봇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범죄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로 판단해 그러한 결함을 없애기 위해 인간의 뇌를 사용한 로보캅이 탄생하게 되었다.
새로운 <로보캅>에서는 로봇테크놀로지 기술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기업 옴니코프사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치안유지에 로봇을 도입하려 하지만 감정이 없는 로봇에 치안을 맡길 수 없다는 반대여론이 거센 상황이다. 옴니코프사는 이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계 안에 인간을 넣기로 했다. 그렇게 인간의 감정을 가진, 인간과 로봇의 경계에 있는 로보캅이 만들어졌다.
로보캅이 되는 경찰 머피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몸을 잃게 되고, 로보캅으로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 원작에서 머피는 범죄자들을 쫓다가 그 범죄자들에게 사로잡혀 총격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머피가 범죄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총을 쏠 때 사용하는 오른손이 가장 먼저 날아가 버린다. 온몸에 총을 난사당한 머피의 왼팔은 온전하게 남아있었지만 그를 로보캅으로 만든 이들은 어차피 죽은 몸이라며 온몸을 기계로 만들기 위해 그의 왼팔도 아랑곳 않고 떼어버렸다.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에서 머피는 차량폭탄테러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만 죽지는 않는다. 온몸에 큰 화상을 잃고 시력과 청각도 잃었다. 살아남는대도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했기에 머피의 아내는 머피를 로보캅으로 만드는데 동의했다. 흥미로운 것은 원작의 머피는 가장 먼저 오른손을 잃은 반면, 여기서는 얼굴과 뇌, 몇 가지 장기만 남기고서 머피의 온 몸은 기계로 대체되지만 오른손만은 기계가 아닌 머피의 손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로보캅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자유의지를 갖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기존 로보캅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그의 기억을 모두 없애버려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그야말로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을 뿐인 제품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로보캅은 감정, 즉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로보캅으로서 눈을 뜬 머피는 감정도 기억도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그 감정이 범죄 상황에서 약간의 망설임을 만드는 비효율적 요소로 작용했다. 보다 효율적인 제품을 위해 노튼 박사는 바이저가 내려왔을 때에 머피 역시 다른 로봇들과 똑같이 행동하도록 만들고, 그 판단을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게 한다. 머피는 바이저가 올라가 있을 때에는 보통의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었지만, 머피의 기억과 감정이 시스템 과부하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마저도 제거된다.
그렇다면 각 로보캅은 어떻게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가. 기존의 로보캅은 휴식상태에서 자신이 죽던 상황의 꿈을 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의 충격과 분노가 그를 깨우고, 그가 인간이던 시절의 파트너가 “네 이름은 머피야”라고 그의 이름을 가르쳐준 것으로 로보캅은 자신이 머피라는 경찰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며 기억과 감정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자신과 머피를 동일한 존재로 여기지 못했지만, 자신을 죽게 만든 범죄자들을 모두 처단함으로서 머피라는 한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새로운 로보캅에게 감정을 돌려주는 것은 가족애다. 아들과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머피는 감정을 제어당한 이후에는 가족들도 범죄자인가 아닌가로 분류할 뿐이었다. 하지만 범죄현장으로 나서는 머피의 앞을 가로막고서 아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고, 또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아내의 호소가 억제되었던 그의 감정을 되살려내며 머피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다.
기존 <로보캅>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충격적인 비주얼이었을 것이다. 총 한방에 손목이 떨어져나가고 피와 살점이 튀는 모습이 화면을 채우는가 하면 기계에 얼굴만 덧씌워진 헬멧을 벗은 로보캅의 모습은 제법 그로테스크하다. 유독성폐기물에 피부가 탄력을 잃은 고무처럼 흘러내리는 모습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비주얼을 불러내는 액션은 상당히 호쾌했기에 영화에 반영된 사회의 모습과 메시지를 빼놓고 보더라도 오락영화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새로운 <로보캅>은 원작에서처럼 잔인한 부분은 없다. 액션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락영화로 <로보캅>을 선택한다면 적은 분량의 액션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머피의 시각을 따라 진행되는 액션 시퀀스는 마치 1인칭 슈팅게임을 하는 듯한 재미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원작에서는 로보캅이 오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극의 전체를 이끌어가며,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도시의 모습이나 로보캅을 만들어내는 인물에 사회비판적인 요소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반면 새로운 <로보캅>은 원작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팍스아메리카나, 기업과 손잡은 매스미디어 등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원작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고뇌하는 것이 머피였다면 새로운 <로보캅>에서 그러한 고뇌는 노튼 박사의 몫이 되며 과학자의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메시지가 극의 연결을 매끄럽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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